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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에 관해

책리뷰(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엄마는 대학을 나왔다면서 그것도 몰라?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보다

아무말없이 틈만 나면 책을 펼치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지적 자극을 받는다.

 

( 택배 에서 나온 스티로폴로 함께 배를 만든 막내 )

 

' 내 아이는 내 마음대로 '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아이를 틀림없는 자기편으로 만들어가던

엄마들이 '자식은 내 뜻대로 안되나봐 ' 하고 맨 처음 손을 드는 때는 언제일까.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는 개인 교수처럼 옆에 붙어 앉아서 전 과목을 가르치던 이른바 극성 엄마들

도 아이들이 중학교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지휘권을 포기

하고 만다. 영어고 수학이고 생물이고 간에 엄마들이 다닐 때 배우던 것과 모든 것이 달라졌기 때문

에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엄마를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엄마들 가운데 끈질긴 사람들은 스스로 학원에 다니면서까지 아이에 대한 교육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이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때부터 공부는 놔두고 공부

이외의 것에 대한 통제로 만족하고 물러서게 된다.

 

중학생 아이들을 둔 엄마들끼리 나누는 하소연은 대부분 엄마를 전지전능한 신처럼 여기던

아이들의 눈에 엄마를 깔보는 빛이 어릴 때 엄습하는 무력감에 대한 것들이다. 특히 왕년에 머

리 좋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대학 졸업 학력을 가진 엄마들은 아이에게 " 엄마는 대학을 나왔다면서 이

런 것도  몰라?" 하며 노골적으로 무시를 당했을 때 자존심이 휴지처럼 구겨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어떤 엄마들은 주책 맞게 눈물까지 솟아올라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세수를 했다며 웃었다.

 

주부의 삶 , 특히 결혼한 지 10년 남짓 된 주부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 책이 자리할 여백을

발견하기가 힘들다. 매일매일 필수적으로 해치워야 할 가사노동은 아무리 숙련된

주부라 해도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뚜렷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당장 펑크가 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던 여성이라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몇 년 동안은 여성 잡지나 주간지 이외에는 책 한 권 읽지 못하고 살아가기

일쑤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소위 여성 문제에 대한 권위자라고 자처하는 남성들일수록

요즘처럼 여자들 살기가 편해진 시대에 왜 시간이 없겠느냐. 아이들이 잘 때 읽어도

되고, 아이들끼리 노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 그 옆에서 읽을 수도 있지 않느냐, 결국

엄마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라고 호되게 질책하기도 한다.

 

물론 우리 주위에는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박사 논문을 쓰는 여성도 있고, 아이들이

잠든 한밤중에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쓰는 여성도 있다. 그러나 그런 여성들은 결국

자기가 자야 할 시간을 줄이는 셈인데, 뚜렷한 목표나 집념을 갖지 않은 대부분의

주부들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자야 할 시간에 자야 한다.

 

또,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아이들이란 참으로 이상해서 자기들끼

리만 재미있게 놀 때 엄마가 뜨개질을 하고 있으면 그냥 계속 잘 노는데, 엄마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금방 엄마에게로 달려와서 방해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주부들은 무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하니 잡지 이외에 읽을 거리는

아예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주부 경력이 길어 질수록 지적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증된 바는

없으나, 속설에 의하면 주부 경력 1년인 주부의 지적 능력은 최종 학력에서 마이너스

1년으로 계산하면 딱 맞는다고 한다. 주부 경력이 10년 된 대졸 주부의 지적 능력은

중학교 1학년 수준이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너무 끔찍한 말이다.

 

이렇게 따져 보면,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주부 경력이 최소한 13년은

넘는 셈이니, 지적 능력은 대학 졸업 마이너스 13년 , 즉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좀 과장된 감은 있지만 내 경험을 돌아볼 때 전혀 근거 없는 계산법

은 아니다.

 

전업 주부 10년이 되던 해 큰애가 중학교에 들어갔다. 어느 날 무슨 수학 문제를 물어

보는데 나로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이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대뜸 "엄마는

대학을 나왔다면서 이런 것도 몰라?" 라고 되받았다. 그것도 짜증이 잔뜩 담긴 목소리

로 ,

아, 이제 친구들의 말대로 드디어 엄마를 무시하는 시점에 들어섰구나. 이때를 잘 넘

기지 않았으면 영원히 무시당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 모른다.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뭐든지 다 알 수는 없어. 전에 배운 걸 다 머릿

속에 넣어 둘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러다간 머리가 터질지도 모르잖니."

 

" 그럼 뭣 하러 대학까지 갔어? 다 잊어 버릴 걸."

" 많이 배운다는 건 지식을 많이 쌓는게 아니라 지혜를 배우는거야."

" 무슨 지혠데 ?"

" 답을 몰라도 답을 찾아가는 방법은 안다는 뜻이지. 자, 네가 그 문

제를 어디까지 풀다가 엉켰는지 나한테 한번 설명해 봐. 엄마는

전혀 모르는 문제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잘 설명해 줘야 해 "

 

훈이는 이제까지 저보다 훨씬 유식한 줄 알았던 엄마가 자기가 아는

것도 모르는 수준이다 싶으니까 신이나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다 듣고 나서, 엄마가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수학을 못했기 때문인

지 잘 못알아 듣겠다면서 더 천천히 기초부터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무슨 교육적인 의도나 깊은 뜻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훈이는 이렇게 쉬운 것도 이해

를 못하겠냐면서 원리부터 다시 짚어 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아. 그렇구나! 엄머, 알았어 이젠 다풀렸어"하며 신나했다.

"그래 .이제 어디서 엉켰는지 알았지? 그렇게 쉬운 걸 갖고 괜히 엄

마를 곯려 먹으려고 했구나. 엄마 때는 그런 거 배워 본 적도 없고,

교과서도 시대에 따라 자꾸자꾸 바뀌니까 니네들이 엄마 세대보다

어떤 면에선 훨씬 유식할 수도 있는거야 . 네가 아는 걸 엄마가 모른

다고 해서 엄마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 그거야 말로 정말 무식한

짓이야"

 

결과만 보면 굉장한 고단수를 쓴것처럼 보이지만, 솔직히 그 순간에

는 은근히 켕기는 구석도 있었다. 만에 하나 훈이가 끝까지 문제를

못 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나나 훈이 두사람에게 모두 플러스로 작용했다. 나는 별

로 애쓴 것도 없이 훈이에게 비교적 지혜로운 엄마로 비쳤고,훈이는

그다음부터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법

을 터득했으니, 고등학교 때도 문제가 안 풀린다 싶으면 나한테로

와서는 "어머니 ,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 보세요, 어디서 엉켰는지

찾아내야 해요 ." 하면서 말로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중학교1학년

문제도 캄캄인데 하물며 고등학교 수학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는

가,

 

그러니까 훈이는 나에게 무슨 실제적인 도움을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의 공부 방식으로 나를 앞에 두고 그런 쇼를 하는 거였다.

벽창호를 앞에 놓고 한참을 떠들다 보면 거의 대부분 저절로 풀리곤

했다.

 

전업주부인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지식에 대

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어른들은 반드시 아이들보다 무엇이든지 많

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어렷

을 때 얻은 정보의 양은 지금 아이들에 비하면 턱도 없이 적다.

일생동안 입력된 정보량만 비교해도 엄마들이 중학교 아이들을

따라갈 수 없는터에 그나마 그 적은 양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양적

으로 보면 엄마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겠다고 죽어라 하고 공부를 할 필

요는 없다. 사전에 담긴 지식을 다 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전 찾는 법만 알고 있으면 된다. 더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엄마에게 사전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기 보다는 스스로 사전을 찾도

록 버릇을 잡아 주는 것이다.

 

물론, 버릇 들이기는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인 방법을 쓸 때 더 효

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집안 분위기 자체가 지적 자극을

받을수 있는 분위기라면 가장 바람직하다. 너희들이 공부를 잘하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보다 아무 말 없이 틈만 나면

책을 펼치는 엄마에게서 아이들은 지적자극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이 평가하는 바에 따르면, 자기들이 비교적 공부를 좋아

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 집안 곳곳에 지적 자극을 줄 수 있

각종 책들이 널려 있다는 점이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단 한시

간도 집중적으로 책을 읽을 짬이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부부는

끊임없이 새로 나온 책을 사들였다. 신문의 신간 안내란에서 괜찮다

싶은 스크랩을 해 두었다가 틈날 때마다 한 권씩 샀다. 워낙 두사람

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 탓에 사들이는 책의 종류는 한마디로 잡스

러웠다. 만화책에서부터 시집들, 월간 종합지들, 계간 문학지들,

소설책에 여행안내서, 야구 해설서, 당구교과서, 등 온갖 종류의 단

행본이 구입대상이었다.

 

변변한 책장도 마련하지 못하고 사는 빡빡한 살림살이에 책이 이곳

저곳에 쌓여 있으니 가뜩이나 청소를 안 하고 사는 집안은 항상

구질구질 했다. 우리 집에 들른 동네 엄마들은 첫마디가 "어머,이집

아빠는 학교에 나가시나 보죠?" 또는 "아빠가 회사에 다니신다면서

웬 책이 이렇게 많아요?" 였다. 어떤 엄마는 아주 솔직하게 이렇게

책이 많으면, 그것도 전집류가 아닌 단행본이 많이 쌓여 있으면 집

안이 아주 지저분하게 보인다며, 집을 깔끔하게 치우려면 우선 저

책들부터 다 없애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여기에다 온갖 종류의 사회과학

책들이 덧붙여졌다. 나이 들어 살림하며 공부하려니까 워낙 알량

했던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그나마 엷어질 수밖에. 미안한 이야기지

만,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들여다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코가 석 자였으니까.

 

그런데 내가 겨우 틈을 내어 공부를 하면 아이들이 기웃거리기 시작

했다. 집에서 밥만 하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책과 씨름하면서

밤 늦게 앉아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무척 신기하게 여겨졌던것

같다.

 

서초동으로 이사 와서 내 공부방이 한 칸 생기자 나는 커다란

포마이카 밥상을 놓고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던 터라 작은

책상이 싫었다. 그래서 회사 같은데서 쓰는 서랍이 없는 커다란

회의용 책상을 샀다.

 

내가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책상에 앉으면 텔레비전에 넋을 빼던

녀석들이 하나둘 의자를 갖고 옆으로 온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말. 그리고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한다는 말인 '공부해라'

가 우리집에서는 전혀 필요 없었다. 밤늦게 귀가하던 남편은 엄마와

아이들이 커다란 책상에 둘러 앉아 공부하던 그 장면이 항상

감동적으로 보였다나.

 

 

참 희안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목표가 더 명확해지고

내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같은 주부, 또는 사람, 여자 , 아이엄마

라는 공통점, 그리고 또 반성한다. 그동안 웬지 모를 불안감에

아이를 공부하라고 닥달했는지도, 게임을 많이 한다며 폰을 빼앗았

을때, 아이의 자유를 빼앗았는지도,,, 물론 중간 과정은 필요했지만,

좀더 신중을 가해야 할것같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中